마을의 삶과 함께한 베이관
베이관은 이주 사회의 확산과 함께 대만 각지로 퍼졌고, 청대 중후기에 이란에서는 관각과 자제단 문화가 활발하게 자리 잡았다. 묘회와 행렬, 절기 행사, 마을 모임은 베이관의 중요한 연주 무대였다. 평소에는 곡과 악기를 익히고, 지역 축제나 행렬이 열리면 징과 북, 수오나, 현악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관각은 연주 공간이면서 사람을 만나고 기예를 배우며 지역 정체성을 나누는 곳이기도 했다. 합주는 호흡을 맞추는 일이 중요했고, 출진에서는 대열과 도구 구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선두 깃발, 장식 패, 징대, 북틀 같은 물건은 지역 공예의 개성을 드러냈다. 베이관이 남긴 것은 곡목만이 아니다. 마을끼리 오가며 축제에 함께 참여하는 방식도 이어졌다.
쉬안서, 음악과 마을을 잇는 공동체
이란에서는 베이관 단체를 흔히 관각이나 자제단이라 부른다. 이름에 들어가는 ‘사(社)·당(堂)·헌(軒)’은 계통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다. 푸루 계통은 ‘사’를, 시피 계통은 ‘당’이나 ‘헌’을 쓰는 경우가 많다. 이 글에서는 읽기 편하도록 ‘쉬안서(軒社)’를 통칭으로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각 단체의 고유 명칭을 따르는 것이 맞다.
이 단체들은 기예를 배우고 교류하며 축제를 맡는 역할을 함께 해왔다. 평소에는 곡패와 악기를 연습하고, 출진하는 날에는 깃발과 북틀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음악과 의장, 사승 관계, 마을 사이의 인연이 한 문화 현장에 모인다.
관각이 출진하면 악사와 깃발, 북틀도 지역 축제와 함께 거리로 들어선다. 베이관은 공동 연주와 마을의 참여 속에서 이어져 왔다.
베이관을 둘러싼 경쟁의 역사
이란 베이관의 역사에서 시피와 푸루는 두 개의 중요한 계통이다. 사승 관계와 창법, 악기, 제례 전통에서 서로 차이를 보인다. 청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기까지 일부 지역에서는 관각 사이의 경쟁이 마을과 지역 인맥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두 계통의 충돌과 경쟁을 기록한 자료도 남아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격한 충돌은 차츰 줄고, 경쟁은 연주 실력과 대열, 출진 도구를 비교하는 방향으로 옮겨갔다. 오늘날 시피와 푸루를 바라볼 때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의 대립을 되풀이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관각이 란양의 지역사회에 어떤 소리와 계보를 남겼는지를 읽는 데 있다.
사원과 향불, 마을 거리가 오랜 시간 쌓여 란양의 생활 풍경을 이룬다.
다섯 얼굴로 읽는 다선왕의 조형
이란에서는 대형 출진 인형을 전통적으로 ‘다선왕(大神尪)’이라 부른다. 출진할 때는 큰 몸체와 의상을 갖추고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 어깨에 메고 걷는다. 팔은 걸음에 맞춰 흔들리고, 그 커다란 실루엣은 란양 행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된다.
얼굴빛과 관모, 수염과 머리, 의상, 손에 든 물건은 다선왕의 역할을 구분하는 중요한 단서다. 머리만 보고 정체를 단정하기는 어렵고, 전체 의상과 소지품, 소속 단체를 함께 살펴야 한다. 출진할 때는 사람이 큰 몸체 안으로 들어가 대열과 함께 이동한다.
이란의 다선왕은 얼굴과 관모, 수염, 의상으로 서로 다른 역할을 구분한다. 이 모습은 란양 행렬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다선왕은 어떻게 란양 행렬에 자리 잡았을까
이란 다선왕의 발전은 지역 사원 축제와 행렬, 마을 사회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출진 전통이 이어지는 동안 다양한 역할과 조형이 더해졌고, 지역적 특징이 분명한 대열이 만들어졌다. 이 흐름은 전후 베이관 단체들이 다선왕을 대거 제작하기 시작한 시기보다 앞선다.
전후에는 시피와 푸루 단체의 관계가 과거의 대립에서 축제 현장에서 대열을 겨루는 ‘핀전(拼陣)’으로 바뀌었다. 일부 베이관 단체는 새로운 다선왕을 제작하며 대열을 한층 다양하게 만들었다. 다만 현재 연구로는 이란 다선왕의 기원을 시피와 푸루의 경쟁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후의 베이관 핀전 문화가 이미 존재하던 다선왕 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출진을 이루는 도구들
이란의 베이관 관각이 출진할 때 대열에는 문장(文場)·무장(武場) 악사뿐 아니라 선두 깃발, 장식 패, 징대, 북틀, 춘셰(春榭) 같은 도구도 함께한다. 각각 실용적인 역할이 있으면서 단체의 이름과 공예, 대열의 존재감을 보여준다. 과거 관각 사이의 ‘사람은 져도 진용은 지지 않는다’는 경쟁은 목조와 자수 장식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었다.
북틀은 악단의 중심에 놓이고, 작은 북을 맡은 선두 연주자가 전체 연주를 이끈다. 춘셰는 ‘차수단’이라고도 하며 출진 때 차와 간식, 제례 용품을 싣는다. 베이관을 듣다 보면 행진과 축제, 지역 공예가 하나의 문화로 연결되는 모습도 보인다.
베이관이 다시 거리에서 울리는 날
앞서 살펴본 베이관과 쉬안서, 다선왕은 행렬이 열리는 날이면 본래의 자리인 거리로 돌아온다. 대열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징과 북이 먼저 울리고 베이관 악단이 뒤따른다. 사람들 사이로 다선왕이 높이 서고, 깃발과 진터우, 여러 관각과 사원 대열이 차례로 거리를 지난다.
길가에서 처음 마주하는 것은 북적이는 장면이다. 베이관과 쉬안서의 배경을 조금 알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른 것이 보인다. 소리가 어디서 시작되는지, 다선왕이 왜 대열에 서 있는지, 하나의 진터우가 전체 행렬과 어떻게 발을 맞추는지까지 눈에 들어온다.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 베이관 관각과 다선왕이 함께 거리로 들어선다.
징과 북을 따라, 란양 행렬의 현장으로
카메라는 행렬을 따라 움직인다. 다선왕이 마을 거리로 들어서고 베이관의 징과 북이 대열과 함께 울린다. 현장의 소리와 모습을 통해 란양의 지역문화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텔 로얄 자오시
베이관과 함께 · 란양 행렬 문화기행
베이관의 징과 북을 따라, 란양 마을 거리로
2026 Royal Explorer 로열 익스플로러는 호텔 로얄 자오시와 함께 란양 행렬의 현장으로 들어간다. 대열과 마을 거리를 따라 걸으면 베이관의 징과 북, 쉬안서, 다선왕, 출진 도구까지 글 곳곳에 흩어져 있던 문화의 단서가 실제로 움직이는 장면 속에서 다시 하나로 이어진다.
소리와 도구, 대열 안에서의 위치를 살펴보면 지역문화가 일상의 거리 풍경에 어떻게 남아 있는지 보인다. 베이관이 지금도 란양의 마을 생활과 이어져 있다는 점도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한 줄기 소리를 따라 마을 거리를 지나 란양 행렬 속으로 들어간다. 베이관의 징과 북, 관각의 대열, 다선왕의 실루엣이 거리에서 교차하며 이 땅에 오랫동안 쌓여온 지역문화의 흔적을 남긴다.